핵심신약역사
1.바울의 어린 시절
바울은 주후 11년경 다소라 불리는 길리기아에서 베냐민 지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시장에서 직물업을 하는 상인이었다. 바리새파였다. 집에서는 아람어를 말하고 구약성경 70인경을 읽었다. 그는 장막 만드는 일을 취미로 배웠다.
당시 다소는 무역업이 번성한 곳이고 헬라문화의 중심지였다. 스토아 철학인들이나 금욕주의자들의 공개 강연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논쟁하는 법을 배웠다. 학교에서는 헬라의 철학과 문학을 배우고 5마일 밖에 가서 여러 종류의 배를 보면서 세계의 항구마다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바울의 세계 선교와 항구는 무관하지 않다.
주후 28년 17살이 될 때 그의 아버지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라고 했다. 바리새파에는 유명한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말리엘은 가장 유명하였다. 사울은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일반 유대인들이 쓰는 아람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모세의 율법을 배웠다. 후에 바울은 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7:9)”고 말했다.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바울은 실망했다. 그 율법들을 다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다메섹에서의 회심
1)살기등등한 청년 사울은 스데반의 사형집행을 “마땅히” 여겼다(행8:59). 이것은 단순히 피동적인 동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가담을 말해 준다. 또한 사울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부터 성도들을 잡아 투옥하는 일을 전담하는 특별 위임장까지 받았다. 그의 열심은 이방인 도시인 다메섹까지 이르렀다.
2)때는 정오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었다. 부활의 주님이 나타났다(행9:1-9).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26:14).” “주여 뉘시오니이까(행9:5)” 그 때 예수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5)”고 대답하셨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3)이 때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소명을 받았다.
3.아라비아 3년의 실천신학 교육
1)행9:23-25절에 “여러 날이 지나매...” 라고 기록한다. 여러 날은 얼마이며 그 동안에 바울은 무엇을 했을까? 갈1:17절을 보면 아라비아에서 3년을 지냈다. 기록은 없지만 기도 생활과 그곳에 여러 교회를 세우지 않았을까? 바울은 다소에서 헬라의 철학 문학 등 여러 교양을 배우고, 예루살렘에 기서 율법과 미쉬나 및 히브리어 등 신학의 필수 과목을 배웠다. 아라비아 3년은 그의 경건생활의 훈련과 함께 실천신학을 배웠다.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외치다가 아레카스4세에 의해 체포 명령이 내려지자 이것을 피해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4.이방 선교의 중심지 안디옥교회
1)행11:19-21절에 수리아의 안디옥교회의 형편에 대하여 기록한다. 기독교는 스데반의 순교 사건으로 유대와 사마리아로 전파되고 마침내는 그 흩어진 성도들에 의하여 복음이 “수리아의 안디옥”이란 이방에까지 전파되었다.
2)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교회에 대표의 자격으로 파송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위험에 처하자 고향인 다소로 내려와 제2의 목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무렵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행11:25)에 오게 되었다. 이 때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는 바나바였으며 바울은 다만 그의 협동선교사였다.
3)주후 46년 예루살렘교회는 흉년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이 생겼다. 생활도 어려운데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든 것이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대표로 하여 구제 헌금을 거두어 보내는 한편 얼마 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르면서 가난한 형제들을 돌보게 하였다(행11:39).
5.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1)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도와 구제한 다음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이 임하였다.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함으로써 명실 공히 이방교회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바울의 선교사로서의 소명은 기독교 역사의 대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다. 그는 다멕섹에서 회개한 후 13년 동안 아라비아 다소 안디옥 등지에서 전도와 목회의 경험을 통하여 선교사의 준비를 하였으며 마침내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된다(행13:1-3).
2)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임명받고 주후 46년 떠난 지중해에 있는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섬으로 출발했다(행13:4). 바울이 구브로 섬의 바보에 이르러 회당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 바예수(아람어/헬라어로는 엘루마. 그 뜻은 박수 즉 마술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울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바예수를 잠시 동안 소경으로 만드는 이적을 나타낸다. 그 결과 섬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이 바울을 초대하여 설교를 듣고 믿게 되었다. 성경은 이 사건 이후 사울이란 이름 대신 바울이라고 부른다. 선교의 주도권이 바나바에서 바울로 옮겨갔다. “바나바와 바울”이란 이름 대신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이방 전도의 주권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갔다(행13:4-13).
3)두번째 선교지는 갈라디아 지방의 밤빌리아였다(행13;13). 바울은 이곳에서 말라리아 열병으로 큰 고통을 당했으며 그 결과 버가의 내륙 지방의 전도를 취소하고 고원지대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는 길은 강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이 있는 험한 산길이었는데 이 길을 바울은 약함 몸으로 갔다. 이 때 바나바의 생질인 요한 마가가 바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행13:13-41절).
비시디아 안디옥은 갈라디아 지방의 군사적 행정적 중심지로 로마인들 외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바울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갈4:14). 바울은 회당장에게 초청을 받아 전도할 수 있었다(행13:6-41절). 구약에서 예언한대로 때가 찼다는 것을 강조함으로 새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선포했다(행13:14-43). 설교의 반응으로 유대인들은 고관 부인들과 남편들을 충동하여 바울은 많은 매를 맺고 추방당했다(딤후3:11/행13:48-52).
4)이고니온의 전도 : 이곳에서는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14:1-7절)”고 할 만큼 회당에서의 전도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유대인 불법적인 폭동을 일으켜 두 사도를 돌려 치려하였다. 바울은 이곳을 피하여 18마일 떨어진 루기오니아 지방의 루스드라와 더베로 갔다.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가 일어났다(행14:8-13). 특별히 이곳은 제우스 신전이 있는 것이다. 바울의 이적을 본 사람들은 바나바를 쓰스(제우스 신)이라 부르고, 바울을 허메(제우스 신의 대변자)라고 불렀다. 이 때 바울의 설교가 행14:15-17절에 기록되어 있다. 아레오바고 설교(행17:22-31)와 함께 순전히 이방인 청중들에게 행한 설교로서 전도 설교를 위한 좋은 예가 된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도 핍박을 받았다.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다 버렸다. 그러나 이곳에서 디모데가 회개하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행14:19).
5)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30마일 떨어진 더베로 갔다. 이곳은 1차 전도여행의 종착역이다.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게” 되었다는 성공적인 결론만 언급한다.
6)그 후 바울은 전에 전도한 장소를 다시 순회하면서 믿음에 거하라고 권하였다. 바울이 주로 한 것은 새 교회의 조직과 행정을 위한 것으로서 이 때 처음으로 장로들이 공적으로 임명되었다. 바울은 새로 임명된 장로들에게 가르침과 행정을 위임하고 갈라디아 지방을 떠나 다소와 밤빌리아를 지나 그의 모든 이방 전도의 중심지인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로 돌아왔다(행14:20-27절).
7)1차 선교여행의 특징
첫째,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정책을 실행했다(롬15:20).
둘째, 큰 도시를 중심으로 전도하고 그 주변의 복음화는 새로 설립된 교회에 일임했다.
셋째로 계획된 전도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교지를 택했다.
넷째,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고전9:19-23) 때에 따라 전도 방법을 달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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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제1강 팔레스틴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 98 | 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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